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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식민사관 때문에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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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논란 1주일만에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로 퇴출하기로 국방부가 결정했다. 이유는 과거 소련 스탈린의 공산당에 가입했던 이력 때문이란다. 우리나라 국군의 주적이 공산당인데 공산당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을 육군의 뿌리로 인정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남로당(남조선노동당, 공산당)에서 활동하가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는 문제 되지 않는다. 남로당이던 박정희 사형 선고 당시는 1948년 11월 11일이었다. 박정희(1917년 생)나이 31살이었고 김일성(1912년 생) 36살 때였다. 김일성의 공산당과 같이 활동한 사람은 홍범도 장군이 아니라 박정희였다.

 

친일파들의 역사관은 근거가 아니라 왜곡을 위한 조잡한 짜맞추기이기 때문에 조금만 따지고들면 앞뒤게 전혀 맞지 않는 것들이다. 조잡한 짜집기로 우리나라 역사 근간을 흔들고 국민들에게 가짜 역사를 주입하려는 의도다. 일본도 국내 친일파들과 마찮가지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 후손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1904~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이긴 일본이 조선 통치권을 갖게 되지만 전쟁에서 이기고도 러시아로 부터 배상금도 받아내지 못하고 전쟁으로 인한 경제 악화만 가져왔다며 일본내에서 러일전쟁은 여론이 좋지 않았다. 일본의 승리라고는 하지만 러일전쟁은 양국의 치킨게임이었고 미국의 루스벨트가 중재에 나서면서(포츠머스 조약) 종전 협정을 맺게 되었다. 그일로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됐다. 그 후 5년 뒤 일본은 조선을 통치하게 되면서 러일전쟁을 중재한 미국이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그리고 일본은 대륙을 목표로 하는 제국주의를 착실히 준비해가고 있다.

 

포츠머스 조약 이후 러시아 동부의 사할린섬 북쪽을 러시아가, 남쪽을 일본이 지배하게 되면서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러시아~일본의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즉, 이 시대에 일본은 조선과 러시아의 적국이었다. 러시아에 모인 독립군과 홍범도 장군은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농사를 지었지만 곧 러시아 관료들로 부터 땅을 환수 당한다. 그래서 1921년 ~1922년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이 러시아에서 어느정도 보호 받으며 안전하게 머물 수 있을까 싶어 스탈린의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홍범도 장군의 기대와 다르게 스탈린은 조선의 독립군을 지원하기 보다 오히려 고려인과 일본 사람이 외모가 비슷하다며 1937년 한인강제이주정책을 시행한다. 일본인과 고려인을 구분하기 어렵고 고려인 사이에도 일본 간첩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러시아 극동지방에 거주하던 고려인을 17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다. 이때 고려인의 고난과 피해 또한 적지 않다. 홍범도 장군은 중앙아시가국 중 하나인 카자흐스탄으로 고려인과 함께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해방 2년 전 1943년 향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한다.

 

현재 윤석열 정부와 국방부가 문제삼고 있는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은 그 것 마저도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독립운동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이념 사이에서 미래의 국가는 어떤 체제가 더 민족을 위해 나은 이념인가를 알지 못했다. 우리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여러 국가들이 그런 혼란 속에 살고 있다. 미국 조차도 메카시즘에 국민들이 극도로 분열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공산주의가 대체로 실패한 체제라는 걸 알고 있지만 100년 전에는 100년 후를 알 수 없었다. 해방되기 전까지는 이념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다시 찾고자 하는 하나의 목적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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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식민사관은 다시는 저항의지를 키우지 못하게 하려는 이념 주입

일본은 아직도 제국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평화헌법을 고쳐 자위대를 전쟁 할 수 있는 군대로 바꾸고 세계 여러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며 일본의 군사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대한민국과 일본도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은 1592년 그때 부터 한반도 정벌을 멈추지 않고 있다.

 

메이지 초기인 1870년 일본의 정한론(征韓論)은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을 점령해야 한다는 한반도 정벌론이다. 그 후로 6년 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해 강화도조약을 맺게 되면서 정한론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1910년 조선은 경술국치로 주권을 상실했지만 국민 저항은 일본의 예상보다 컸다. 특히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은 세계에 조선의 독립의지를 보여주었다. 독립군은 더 조직적화 됐고 조선인의 독립의지는 더 커졌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한반도에서 물러났다. 만약 36년 동안 독립군이 없었고 국민이 일본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권을 계속 유지했을 수 있다. 일본이 패전하기는 했지만 미국은 열강 대열에 올라 온 일본에 조선의 식민을 인정하고 있었다. 경술국치 후에도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군은 일본군과 계속 저항했다. 사실상 조선고 일본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는 외교적으로도 조선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었다. 만약 미국이 조선에 일본의 주둔을 허락했다면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조선 독립군은 계속해서 일본과 싸울 것이란 걸 미국과 국제사회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은 다시 한반도를 침략하게 된다면  임진왜란 때의 의병일제강점기의 독립군 같은 저항세력이 생겨나지 않게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친일사관으로 세뇌하기 위해 교육, 문화, 정치, 경제 다방면에 친일파를 양성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봐서 알지만 일본의 그런 장기 프로젝트는 전혀 효과가 없지 않다. 윤석열이 외친 이념은 일본의 친일파 양성에 필요한 유용한 도구 중 하나다. 가장 유용한 건 아무래도 "돈"이다. 일본은 미래에 대한민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있어 보이는 사람을 선별해 금융지원을 하고 일본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준다. 그 외에도 일본은 한국의 청소년,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교묘하게 심리전을 펼쳐 왔다. 그래서 조상 중에 친일파가 없더라고 많은 사람들이 시나부로 친일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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