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회의에서 북한의 차관급 장관이었던 박영수가 격앙된 목소리로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송선생님도 아마 살아나기 어여울거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아니, 그러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거 같아요?"
이 발언은 김영삼 집권 직후 발생한 일이었다. 발언 당사자 박영수는 4년 후 해명하기를 만약 남한이 북한을 폭격할 경우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취지였다고 했다.
전체 회의 내용의 앞뒤가 잘리고 "서울 불바다" 발언만 부각되서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당시 남한에는 전쟁 위기로 시민들이 실제로 불안해 했다. 그 전에도 북한은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남한을 도발해 왔기 때문에 이런 군사적 긴장상태는 늘 있어왔다. 그러나 군부독재가 끝나고 마침내 문민정부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 이런 도발적 발언이 나왔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더 불안해 했던 분위기도 있다. 이런 불안한 위기감 조성은 언론의 부추김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의 무인기 도발로 한국 공군의 위상이 부끄러울 정도로 추착했다. 실제로 무인기 잡겠다고 전투기가 출동하고 경공격기가 추락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고 그를 의식해서인지 다음날엔 풍선과 새때 출몰에도 전투기를 띄웠다.
서울 불바다 발언은 2020년 북한 김여정이 문재인을 향해서도 맹공했던 적이 있고 2017년에도 북한 무인기가 성주의 사드 배치 지역까지 침투해 기지를 촬영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부터 북한의 무인기를 활용한 생화학 공격이나 테러 가능성을 여러 전문가가 문제제기를 했지만 현재까지도 무인기 관측이나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은 문재인의 의식한 듯 북한에 대해 더 강도 높은 응징과 보복을 지시하고 있다. 북한에도 무인기를 그가 선거 때 공약했던 "선제타격"처럼 북한을 향한 도발을 지시하며 안보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무인기 도발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전쟁은 그렇게 별거 아닌 이유로도 발생할 수 있다. 남북은 휴전 후 70년 동안 계속해서 냉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처럼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있어 북한이 직접 도발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남한의 대통령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전쟁을 언급하는 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런데 윤석열의 전쟁 발언은 본인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그가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천공의 발언을 그대로 전한 것인지가 지금 더 의문점이 많이 든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타격할 게 아니라면 굳이 북한처럼 정찰용 무인기를 투입할 필요가 없다. 인공위성으로 어느 때 보다 뚜렷한 화질의 북한 지리를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군수통권자이긴 하지만 국방에 대해서는 아마추어다. 특히 평생 검찰만 했던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국방 참모들의 의견 수렴도 없이 거의 즉흥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건 국제적으로도 한반도 안보 위기만 가중 시키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위기를 더 가속화 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살얼음판 같은 아마추어 정부에서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해서라도 윤석열은 발언을 할 때 천공이 아닌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회의도 하고 조언을 들어서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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