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들이 상대 정치인을 향한 문자폭탄은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를 계기로 본격화 됐다.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에 반대하던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민주당 지지자들이 문자폭탄을 보냈고 표창원 등 몇몇 의원들은 국회의원의 전화번호를 공유하며 이를 부추겼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도 익명 투표를 조건으로 탄핵안 가결에 동의했다.
이 분위기는 대선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문자폭탄이 상대 정치인을 굴복 시킬 수 있을 만큼 위력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그 문자폭탄은 문재인 정권 5년 내내 정치인을 옭아매는데 쓰여졌다. 대선 토론 중 문재인 지지자들의 도를 넘는 문자폭탄은 상대 후보와 의원들에게 공포감을 줄 정도라며 중단 해 줄 것을 호소했지만 문재인은 선거의 재미를 위한 양념 같은 것이라며 사실상 지지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재인 팬덤은 점점 더 과격해지고 폭력적이 됐다. 같은 민주당 의원이 문재인을 곤란하게 하거나 의견이 다른 소신 발언을 할 때도 양념폭탄으로 결국엔 사과 시키고 굴복시켰다. 그 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재명이었다. 오죽하면 요즘은 태극기 부대로 알려진 보수 지지자들도 친문이 이재명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다.
민주당 의원이 이재명과 같이 사진만 찍어도 ㅉ묻었다며 집중 테러를 당했다. 그래서 누구도 쉽게 이재명 곁에 다가가지 못하고 자기 발언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난 5년 문재인의 민주당은 가장 민주적이지 않은 정당이라는 흑역사를 낳았다.
민주당에 박지현이라는 20대 신예가 영입됐다. 지난 대선 막바지 이재명 후보를 도왔고 20대 여성 지지율을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본선은 석패했지만 이재명은 박지현을 설득해 민주당에서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고 공동비대위원장에 선출됐다. 박지현은 N번방 사건을 파해친 인물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함께 했던 동지들은 여전히 익명을 고수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N번방은 경찰도 수사를 꺼려할 만큼 증거수집이 어려웠던 악질 사건이고 어린 여성들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게 세상에 공개 되면 보복 범죄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서 선거운동 무대에서 얼굴과 이름을 공개했다.
민주당과 박지현의 갈등은 지방선거 전후로 시작됐다.
민주당에는 수십년 정치활동을 하면서 나름 선거에 특화 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이른바 선수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정치 신인 어린 여자 애가 선거를 코 앞에 두고 민주당에 쓴소리를 계속 해대니 좋게 보일리 없다. 민주당이 180석에 취해 방만하게 당을 운영했다. 잇다른 성비위 사건에도 180석 대승을 했으니 민주당의 성범죄 정도는 국민들도 눈감아 주는 구나, 우리 진영의 입시 비리는 국민들도 애교로 봐준다며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박지현이란 인물이 나타나기 2, 3년 전부터 민주당 내부에서 누군가 이런 자성, 개혁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그랬다면 민주당이 정권을 내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분위기는 이재명이 일 잘하는 건 알지만 민주당 버릇을 고치려면 윤석열 찍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5년 전 이재명이 친문 주류 민주당에서 당했던 팬덤 폭력과 현재 박지현을 향한 이재명 팬덤 폭력은 그 흐름이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지난 5년 문재인 지지자들과 이재명 지지자들이 대립각을 세워 서로 싸웠던 것처럼 앞으로 5년 또 이재명 지지자들과 박지현 지지자들이 민주당 내에서 서로 각을 세우며 대립하게 될지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박지현 지지자들 주변엔 성차별 갈등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젊은 여성들이 모여들고 있다. 국민의힘에 이준석을 중심으로 20대 남자들이 모여든 현상과 비슷하다. 국민의힘도 여러가지 이유로 내홍을 겪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당 의원 모두가 박지현을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개인적으로 박지현과 같은 의견을 갖고 있어도 아마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 이재명과 악수만 해도 ㅉ묻었다고 공격 받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박지현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민주당 의원이 있다면 아마 어떤 공격을 당할지 우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재명도 당내 지지세력을 결집해야 하기에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럽겠지만 언제까지 외면한다고 해결 될 문제는 아니다. 문재인처럼 폭력을 방치하며 자기 팬덤만을 믿고 쉬운 정치의 길로 갈 것인지 민주당의 통합을 위해 험난한 길을 택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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